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지코 후지오 (문단 편집) === 데뷔 이전 === [[1944년]] 후지모토 히로시(이하 F)가 다니고 있던 [[도야마현]] 타카오카 시의 조즈카 [[초등학교|소학교]]에 아비코 모토오(이하 A)가 [[전학]]을 오면서 두 사람은 만나게 되었다.[*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F는 성인 '후지모토(Fujimoto)'에서 따왔고, A 역시 성인 '아비코(Abiko)'에서 따왔다.] A가 쉬는 시간에 노트에 만화를 그리고 있던 것을 F가 보고 말을 건 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사이가 친해지게 되었으며, 이 관계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까지 지속되었다. 당대의 많은 만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 모두 '만화의 신'이라 불렸던 [[데즈카 오사무]]를 동경하고 있었으며, 아래의 필명과 관련된 일화 역시도 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다. 둘은 데즈카 오사무의 [[신 보물섬]]에 충격을 받고 만화가를 지망하게 되었다.[* 이 때의 충격은 만화의 길에서도 묘사되어 있다.] 손재주가 있었던 F가 반사 환상 등기를 제작하였고, 그것을 소비하기 위한 만화 '천공 마의'를 공동으로 그린 것이 처음으로 만든 합작이 되었다. 이것을 [[그림]] [[연극]]같은 느낌으로 동네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다고 한다. [[중학교]]에서 [[고등학교]]에 걸쳐 만화 소년을 비롯한 만화 [[잡지]]에 투고를 시작하였으며, 각각 따로 만화를 그리지만 공동 명의로 발표하고 [[원고료]]도 반씩 나눈다는 콤비 스타일은 이때부터 유지되었다. 당시 사용하던 [[필명]]은 '아시즈카 후지코'로서, 투고 당시에는 데즈카 오사무의 필명을 본따 '데즈카 후지오'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너무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'데(手)즈카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한다'는 의미의 아시(足)즈카 후지코로 변경하였다. 이윽고 그들은 데즈카에게 [[편지]]를 썼는데 확고한 터치로 미래가 기대된다는 내용의 친필이 담긴 [[엽서]]를 받았다. 이것은 둘을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만든 촉매제가 되었다. [[1951년]] 고등학교 재학 당시 [[봄방학]]을 이용하여 두 사람은 데즈카 오사무의 자택을 방문하여 자신들이 그린 만화판 '[[벤허]]'를 데즈카한테 보여주었다. 데즈카는 원고를 받고 "너희들이라면 해나갈 것이다"라고 격려했다고 한다. 또한 그들이 가고 난 후에도 원고에 발휘된 능숙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먹고 '터무니 없는 아이들이 나타났다..'라면서 당시의 [[원고]]를 계속해서 보관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. 같은 해에 둘은 마이니치 소학 [[신문]]에 [[편지]]와 [[천사]]의 타마짱이라는 [[4컷 만화]]를 보냈다.[* 만화의 길에 게재된 '천사의 타마짱'은 A가 [[리메이크]]한 것.] 한달 후 신문에 '천사의 타마짱'이 게재되면서 두 사람이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 학교 교사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한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. [[1952년]]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A는 친척의 [[신문]]사에 입사해 지면 일러스트 작성 등의 회사 업무를 진행하였고, F는 제과 [[회사]]에 전기기사[* 중,고등학교를 공업과에 다녔다.]로 입사했지만 3일만에 그만두고, 잡지에 만화 투고를 계속하였다. 이 당시 아시즈카 후지코 명의로 발간된 만화가 'UTOPIA 최후의 세계대전'이며, 일본에서 가장 프리미엄이 붙은 만화 중 하나이다. 소설 [[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]]에서도 중요 서적으로 언급되는데, 초판일 경우 [[고서점]]에서 '''사들이는 가격만으로 100만엔 이상'''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